세상이 무섭다.

Mi 2016. 10. 22. 22:51 |

지금 드는 생각은, 물론 얼른 취직해서 빚을 최대한 빨리 갚는 것도 중요하지만. 

페미니스트에 관련한 책들을 하루라도 빨리 사서 읽고 싶다는 거다. 난 페미니즘에 대한 공부가 너무나 부족하다.

지금 이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트위터 덕분인데, 오늘 하루도 트위터는 지옥이었다. 


카우보이 모자 청년 리리에타 사건 이후로 트위터는 계속해서 여성들의 성폭력과 성희롱에 관한 실토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나는 그저, 내가 팔로하는 분들의 글과 그 분들의 리트윗을 통해 페미니즘을 배웠기 때문에, 사실 페미니즘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한게 사실이다. 

그런 와중에도 이렇게 어제 오늘 트위터의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그저 가슴이 먹먹하고 울컥하며 화가 난다. 

다른 나라도 물론 여성으로서 겪는 차별이 있긴 하지만 내 조국, 대한민국 여성들이 겪는 차별은 그 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냥 가만히 있지 왜 시끄럽게 만들고 난리냐' 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냥 가만히 있는다면, 이 차별이 공론화 될 수 있었을까? 지금 트위터에서 너도나도 앞서서 말하고 있는 그 폭력과 그 수 많은 성희롱들에 대해서 얘기가 나올 수 있었을까? 

'부드러운 대화로 얘기를 할 수 있는 건데 너무 공격적으로 나와서 싫다, 무섭다'

난 이제 저 '부드럽다'는 단어 조차 싫다. 

부드럽게 대화해서 변할 수 있는 주제가 있고 아닌게 있는 거다. 여성들은 더이상 기다리고 설득하는 것에 지쳤다. 



유명한 소설가의 성희롱 사건이 터지고, 시인과 만화가, 큐레이터, 음악가의 성희롱과 성폭행에 대한 내용들이 줄줄이 나온다. 이건 '반의 반도 안되는' 얘기라고도 한다. 

여배우에겐 아무말 없이, 남배우에게만 키스를 하라고 디렉션을 주는 감독도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성혐오를 하며, 폭력을 휘두른다. 

그러나 정말 우습게도, 지금 이 얘기들은 오로지 트위터에서만 나돌고 있다. 트위터는 지옥인데 트위터만 벗어나면 너무나도 평화롭다. 그 차이가, 정말 기가찬다.  


예전의 나는 여혐에 대해서 무지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여혐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것에 대해 인지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페미니즘에 대해 더 철저히 공부를 해서 나 스스로가 여혐을 하지 않도록 조심 할 것이다. 



요즘, 나는 계속해서 엄마에게 결혼에 뜻도 없고, 아이도 뜻이 없다는 얘길 자주 한다. 

엄마는 말로는 '응, 그래. 네가 알아서 해.' 라고 하시지만, 내심 손주를 보고 싶으신 눈치다. 

하지만 난 이 끔찍한 세상에 과연 나 좋자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게 옳은 일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금도 이렇게 흉흉한데 내가 낳은 아이가 살아 갈 세상은 얼마나 더 끔찍할까. 

물론 더 좋아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결단코 좋은 방향으로 생각되지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바뀐게 있다면, 옛날에는 언제 죽어도 그만, 이라는 생각을 늘 지녔는데 요즘은 달라졌다. 

내 의지로 태어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렇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끝까지 버티고 살아 볼 생각이다. 

옛날엔 죽고 싶다, 차에 치여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요즘은 오히려 내가 사고로 죽게 될까봐 약간은 두려워졌다. 내 목숨에 미련이 있어서는 아니다. 그건... 그건 아마도.

부모님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먼저 죽고 싶진 않다. 적어도 부모님께 짐을 지우고 싶진 않기 때문. 




내가 죽고 싶지 않다고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에는 이런 이슈들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진 것도 있다. 

내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동안 당해왔던 온갖 희롱과 차별들. 그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쉬쉬하고 움츠려야만 했던 지난날들에 대해 이제 작별을 고하고 싶다. 


초등학교 5학년 브래지어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학교 앞 횡단보도를 건너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성인 남성 두 명 중 한 명이 내 가슴을 툭! 하고 치고는 날 보며 웃고 지나갔을 때, 나는 그 순간 당황함과 동시에 너무나 무서웠다.

그들은 그런 나를 쳐다보며 낄낄 대고 있었고 그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그런 나를 그냥 쳐다보고 지나가기 바빴다.

초등학교 5학년. 

가슴이 튀어나온 여자라는 이유로 나는 그 어린 나이부터 성희롱을 당한 것이다. 


이것은 엄마도 아는 얘기지만,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얘기다. 

그 날, 나는 혼자서 집 근처 계단에서 놀고 있었고 그 때 잘은 모르지만 몇 번 봐왔던 동네 오빠를 만나 같이 놀았다. 

그 오빠는 자기 집에 가서 놀자고 했고 나는 어쨌든 얼굴을 아는 동네 오빠였기에 따라갔다. 

그 오빠는 자기 방 이불 속으로 나를 눕혔고 나는 아무것도 모른채 이불 속에 누웠다. 

갑자기 그 오빠가 손을 내 팬티속으로 넣어 내 성기를 만졌고 꺼낸 자신의 손을 자신의 코에 갖다대며 냄새를 맡았다. 

그 당시 나는 그게 무슨 일인지 잘 몰랐지만 본능적으로 이게 좋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 수 있었고 오빠가 다시 내 팬티 속으로 손을 넣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집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오빠는 안된다며 방문을 잠그고는 날 보내주려고 하지 않았고 덜컥 겁이 난 나는 울기 시작했다. 

내가 울자 당황했는지 문을 열어 주길래 나는 뒤도 안돌아보고 방문을 나왔고 그 때 그 오빠의 엄마가 집안으로 들어오며 우는 나를 보고 놀란 눈치였으나 나는 얼른 그 집에서 나가고 싶을 뿐이였다. 지금 나가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에. 


중학교 때 살던 집은, 집으로 가는 골목길이 음습해서 소위 노는 남학생들이 항상 그 주변에 죽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하교 길에 지나던 남학생 무리가 내 볼을 꼬집더니 '못생겼어 ㅋㅋㅋ' 라며 놀리곤 지나갔다. 

해꼬지 당할까봐 무서웠던 나는 빠른 걸음으로 집안으로 들어왔지만, 그 작은 행동과 생각해보면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그냥 못생겼다는 말에도 덜컥 겁이 날 정도였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 어릴 적 일들이라곤 안 좋은, 강렬한 일들만 대부분 기억하는데 저 기억들은 그 순간의 두려움과 공포심이 커서 아주 생생히 기억난다. 

지금까지 이런 얘기들을 친구들 그 누구한테도 해본 적이 없다. 나만 당했던 이상한 일이라고 여겨왔었고, 그런 일을 당한 사람은 극히 적을 것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그러나 최근 트위터 상에서 실토되고 있는 여러 트윗을 읽어보면 수 많은 여성들이 나와 비슷한 일을 당했고 더 심한 성폭력, 강간까지 당한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강간은 남의 일이라 여겨왔지만, 지금은 그저 내가 운이 좋아서 당하지 않았구나- 라고 생각 될 정도다. 

몇몇의 남성들은 너무나 쉽게 여성을 성적으로 타자화하고 성적으로 놀리며 그것에 대해 가볍게 생각한다. 

그런 것을 당하는 여성들도, 그런 사회속에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그저 자신이 조금 예민한 걸까..하고 넘기고 만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어 가고 있다. 

한국에서 페미니즘을 외치는 사람들이 많아 지고 있다. 

아직은 트위터 상에서의 외침이 강한 것이 사실이지만 나는 점차 이 현상이 대한민국 전체로 퍼져 나갈 것임을 믿는다. 

우리는 서로 연대하고 용기를 줄 것이며 이 쓰레기 같은 대한민국의 현실을 천천히 바꾸어 나갈 것이다. 


나는 현재 빚많고 일자리를 찾는 백수에 불과하지만, 위치에 상관없이 나처럼 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이슈에 대해 얘길하고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느 사람들은 트위터를 병신들의 집단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트위터가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여자임에도 여혐을 하고, 여혐을 당하는 것에 대해 몰랐을 것이며 내가 그 동안 당해왔던 성차별과 성희롱들에 대해서 뭐가 잘못된 것인지 몰랐을 것이다. 

새벽늦게 술먹고 돌아다니다 처참하게 강간당하고 살인당한 여성의 뉴스를 읽으며, '으이구 그러게 여자가 밤늦게 돌아다녀 왜-' 같은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했을 것이다. 

'여자가 조신하게 굴어야지' 라거나 '어머, 그 나이 되도록 남친이 없어요?' 라거나, '그래도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야 행복한 삶이죠' 라는 어처구니 없는 얘기들을 듣고도 아무 반박도, 뭐가 잘못 된 말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달라질 것이고, 달라졌다. 

이제 내게 남은 건 오로지 공부와 연대, 그리고 빚청산 (...ㅋㅋㅋ).


내 숨이 다 할 때까지, 나를 위해 공부하고, 노력 할 것이다!!!!! 'ㅅ')/




덧. 언니가 예전에 자신이 읽고 많이 울었다며 책 한 권을 소개해줬었다. '자존감수업' 이라는 책이었다. 

최근에 다 읽었는데 나도 많이 울었다. 언니가 '나도 자존감이 낮지만, 너도 많이 낮은 것 같아' 라고 했었는데 

맞는 말 이었다. 나는 많이 움츠려 있었고, 자존감이 낮다. 저 책을 읽고 '나'라는 존재를 좀 더 사랑하고 '나'라는 것에 당당해져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다. 나는 당당한 페미니스트가 될 것이다. 

Posted by 미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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